영화 [1987]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민주열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싼 사건에 얽힌 당시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민주화를 위한 항쟁으로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되어 가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의 줄거리와 당시 사회적 배경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줄거리
데모를 하다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온 서울대 출신의 박종철 학생은 모진 고문을 받던 중 의식을 잃게 되어 급하게 의료진을 불러보지만 사망 판정을 받게 됩니다. 고문 중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크게 일어날 것을 의식한 치안본부는 박종철의 죽음을 심장마비에 의한 쇼크사로 발표하게 됩니다. 사인을 숨기기 위해 부검이 진행되지 않도록 화장으로 처리하기 위해 공안부 검사 최환에게 집행 영장을 결재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이를 이상하게 여긴 최환은 시신 화장을 막고 기자에게 비밀리에 사건을 알리게 됩니다. 이상함을 느낀 기자는 부검의에 의해 고문에 의한 질식사라는 사인을 듣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게 됩니다. 사건의 책임을 위해 자신들의 처우를 약속받고 두 명의 형사가 대표로 구속되게 되지만 약속한 바와 다르게 사건이 진행되자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교도관으로 일하던 병용은 그날의 진실을 알리려다 적발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용의 조카 연희는 천주교 사제단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에 의해 그날의 진실이 전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결국 사건을 주도한 박처장과 그의 부하들은 구속이 되고 전국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시위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회적 배경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1981년 대통령 취임 이후 1988년 2월까지 제5 공화국은 지속됩니다. 당시 빠른 경제 발전과 물가 안정이 이루어졌으나, 군사 정권을 기반으로 언론 검열과 인권 탄압이 자행되면서 대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의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불순한 세력이 일으킨 시위로 단정 짓고 계엄군을 동원해 시위와는 상관없는 일반 시민들까지 무자비하게 폭행하며 무력으로 진압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치안 보호라는 명분 아래 삼청 교육대를 설립하여 범죄자 외에도 무고한 시민까지 수용하여 불법적인 인권 유린을 자행되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은 안기부에서 만든 관제 야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여당을 전혀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계속된 군사 정권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의 정서와 상이하였으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게 커져 6월 항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헌법과 정권의 개혁안을 발표하게 만든 사건으로 한국 민주화와 자유화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국민적 평화 시위로 군부 정권을 몰아냈다는 점에서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한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학생이 시위 중 경찰에게 연행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게 됩니다. 대공분실은 당시 경찰청 보안국이 설치된 기관을 말하며 간첩과 국가보안법의 위반자를 조사하고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소한 범죄 내용을 본인이 자백하거나 인정할 때까지 각종 고문을 자행하던 곳으로 인권 유린이 일어나던 곳이었습니다. 그날도 서울대학교 민주화 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선배의 소재를 추궁하는 위해 각종 고문이 이루어졌으며, 그러던 중 의식을 잃게 되고 사망에 이르기게 됩니다. 정황상 고문에 의한 사망임이 분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장마비에 의한 쇼크사로 최초 언론에 보고하게 됩니다. 유명한 일화로 조사 내용의 추궁을 위해 책상을 "딱"하고 세게 두드리니 갑자기 "억"하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고 사망 원인이 보도되었습니다. 훗날 사인은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지게 되었지만. 언론 검열이 자행되던 당시 시대 배경으로 자칫하면 진실이 묻혀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알리고자 열망한 여러 용감한 기자과 민주 열사들에 의해 국민들에게 사건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고귀한 민주열사의 죽음과 희생 그리고 의식 있는 언론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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